[담양신문] 200개 테이블의 꿈, 현실은 달랐다

1980년대 말, 국가 주도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대안교육 운동은 민주화의 바람이 거셌던 '87년 체제'를 계기로 제도권 안팎에서 동시에 태동했다.

초등, 일반, 생태,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교육자들이 모여 주류 교육과는 다른 결의 교육 활동을 꿈꾸고, 시도하며, 실천해 보려는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1995년 대전에서 열린 첫 전국 모임에서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다른 교육’을 지향하던 이들의 자발적인 연대는 전국에서 200여 개의 테이블이 한자리에 모이는 뜨거운 현장으로 이어졌다. 당시 현장을 회상한 배 교장은 “서로들 놀랄 정도였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감동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그 뜨거웠던 열정은 여전히 제도적 장벽과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혀 있다. 교육당국의 편협한 인식, 획일적인 감사 기준 등은 대안교육이 현장에서 자율성을 발휘하기 어렵게 만드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지적된다.

대안학교 교육과정과 특성화고 기준의 괴리

법률상 특성화고등학교로 분류되는 대안학교는 1997년 교육법에 등장한 ‘직업계 특성화고’ 개념과 맞지 않아 혼란을 겪고 있다. 5년마다 실시되는 학사 감사에서 직업계 기준에 맞춰 교육과정을 평가받다 보니, 농사, 제과제빵, 옷 만들기 등 대안학교만의 특성화된 교육과정을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배수홍 한빛고등학교 교장은 “대안학교만의 특성화 교육과정을 별도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교육청과 도의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교육 당국의 인식 문제와 편견

현재 교육청은 대안교육을 단순히 학업 중단 예방이나 학교 밖 청소년 교육 기관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 기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탁하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이러한 시각은 학생들에게 낙인효과를 낳으며, 교사들의 자원 역시 어렵게 만든다.

장학사들은 학사 감사 과정에서 “특성화고인데 왜 전문 교과(직업 관련 과목)는 적고 보통 교과(국어, 영어, 수학 과목)가 많냐”는 지적을 하곤 한다. 이에 대해 학교 현장에서는 다소 경직된 기준에 따른 간섭으로 받아들여져 아쉬움이 크다는 반응이다.

배 교장은 “교육법이 정한 최소 학점 기준만 충족하면 되는데, 교육청이 일률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대안교육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또한 배 교장은 인성 중심 특성화고에 대해 교육 당국이 여전히 ‘학업 중단 위기 학생들을 위한 특별한 학교’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한다며, “대학 진학률이 높은데 왜 그렇게 많이 가느냐”는 반응을 들을 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대안교육의 성공 사례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교육의 성과들은 분명 존재한다. 제도권 교육의 한계를 넘어서 다양한 철학과 방법으로 학생들의 잠재력을 꽃피운 대표적인 사례들이 있다.

함평 골프고, 장흥 한국말산업고, 순천 한국바둑고등은 특정 분야의 전문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진로를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각 산업 분야의 인재 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충남 홍성에 위치한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는 유기농 농업의 선구자로, 생태 감수성과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 교육으로 주목받고 있다. 자연 친화적인 농법과 지속 가능한 삶의 가치를 교육 현장에 녹여낸 이 학교는 7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하며 대안교육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대안교육이 획일화된 틀을 벗어나 각 학교의 고유한 철학과 자율성을 바탕으로 할 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만히 지켜봐 달라”

인터뷰 말미에서 배 교장은 “교육청에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며 “다만 저희가 하고 있는 교육을 있는 그대로 믿고 지켜봐 주셨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는 단순한 방임이 아니라, 대안교육의 본질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제도권의 잣대로만 평가하고 개입하는 현실에 대한 간절한 호소다.

그는 “대안교육 정책은 재정적·행정적 지원에 집중해야 하는데, 자꾸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대안교육의 미래를 위한 제언

30년 전 열정으로 시작된 대안교육 운동이 진정한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교육 당국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대안교육을 ‘문제 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아닌 ‘다른 철학과 방법을 추구하는 정당한 교육’으로 인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현장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획일적인 기준이 아닌 다양한 교육적 가치를 포용하는 교육 생태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

배 교장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특별한 정책 지원이 아니라, 지금 하는 교육 활동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는 것”이라며 “대안교육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